[소원] 00 && 01 by 설우



[090902] 소원_00


"닭살 돋는 말이지만, 우리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면서 살자."


 쑥쓰럽다고 어색한 미소로 말하면서도 직시해오는 눈빛은, 그 말이 결코 가벼운 뜻이 아니라는 느낌이 너무 가슴 벅차게 다가와서.
세상 어느 소리보다 시끄러운 심장소리와 터질 듯 달아오르는 얼굴과 넘칠 듯 젖어드는 눈가가 창피하다는 것도 잊고 그 말을 한 상대의 작은 두 손만 꼬옥 잡았다.


 열기 많은 큰 손이 감싸자 그 열기 따라 따뜻해지며 맞닿아 오는 작은 손바닥과 가는 손가락은, 너무도 부드럽고 가냘퍼서.
평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제 여자에게 프로포즈하는 순간마저 넘겨버린 바보같은 남자의 눈물이 떨어지지고, 그 바보의 여자가 큰 키의 머리를, 팔을 뻗어 품에 안았다. 철 들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착하기만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옮아버린 눈물을 참았다.


"결혼식은 언제 올려?"


"어머, 속이 쓰려서 약 올리려고 온 거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 하얀 복도를 지나,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하얀 병실에 알맞게 창백한 여자의 모습에 혀를 차며 물었다. 시간이란 것은 이 여자에게만 절망감을 안겨주지 않는 것인지,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웃으며 되물어 온다. 자신이 앉아 있는 침대 옆 의자를 탁탁 쳐대는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을 개새끼 부르듯 하던 행동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설마 그런 몸으로 정말 결혼같은 걸 할 생각은 아니겠지?"


"누굴 질투하는 거야? 그 녀석? 아니면.. 나?"


"곧 죽을 목숨 주제에 그 녀석한테 미련 두지 말란 소리야."


"우린 불 같은 사랑을 할 거야."


"그 전에 네가 송장이 되어버리겠지."


"정말 서로 죽고 못 사는 사랑을 할 거야."


"그 녀석마저 끌고 저승으로 갈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든지!!"


 병원에 입원한지 반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처음으로 병문안 온 주제에 참 빨리도 돌아가버린다고, 잔뜩 화 난 얼굴로 병실 문을 쾅- 닫고 가는 남자의 모습을 되짚으며 미소 짓고 만다. 금새 꺼지더라도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사랑을 하다가, 하다가.. 그 사랑이 식고나서는 서로 아는 채도 하고 싶지 않을 사이가 된다면. 모든 이들의 평생에서, 그 정도의 시간만이 자신에게도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욕심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너무 많이, 바보에게 상처를 입힐까봐 두려워,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만다.



[090906] 소원_01


"오빠, 오빠는 누구에요?"


 병원 앞에 있는 문방구에서 사온 풍선들을 열심히 불고 있는 남자에게, 침대 위에 엎어져 팔로 턱을 괸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자신과 같이 2인실 병실을 쓰고 있는 환자, 정수인.이라는 언니의 남자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그저 애인인지, 남편인지 궁금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언니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엄마 아빠가 되기엔 확실히 어린 것 같은데, 간호사들의 부러움 가득한 쑥덕 거리는 소리로는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 결혼이라나 뭐라나.


"소우연.. 이라고 해."


"아니 그러니까, 언니랑 무슨 관계냐구요. 애인? 남편?"


 말을 한 번 주고 받고 나니까, 목구멍에서만 꼴깍거리던 궁금증이 꼬마 아가씨 혀끝에서 따다다다 쏘아졌다. 우연은, 안 그래도 오늘은 수인이의 룸메이트-병실이라곤 해도, 룸메이트긴 룸메이트니까-에게 어떻게 점수를 따볼까 잔뜩 겁 먹고 고민하고 있던지라, 막상 먼저 쏟아지는 관심에 당황했다.


"애인..일걸?"


"애인이면 애인이지, 일걸?은 뭐에요? 오빠, 짝사랑 중이에요? 언니 좋아서 쫓아다니는데, 언니는 오빠한테 그저 친구라는 생각밖에 없는 그런?!"


 엎드려있던 몸을 발딱 일으켜, 무릎 꿇고 앉아 얼굴을 들이밀며 다다다다 쏟아지는 아이의 질문에 우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맘 먹고 말 걸어 볼 걸 그랬다. 적어도 자신이 뜸들이던 이틀은 빨리 앞당길 수 있는 대화인데.


"약혼자야."


"반지 있어요?"


 풍선을 들고 있는 우연의 왼손을 잡는 아이의 열 높은 양 손에 우연이 손에 힘을 빼자, 묶기만 하면 됐던 빵빵한 풍선이 푸쉬쉬 소리내며 천장으로 솟는다. 우연이 일부러 놓은 것이지만, 아이는 자기가 반지 보겠다고 우연의 손을 잡아당긴 탓에 놓친 것인가 깜짝 놀라 하늘로 솟는 풍선을 눈으로 쫓다가, 풍선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우연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어때? 이쁘지?"


 우연이 오른손으로 풍선 하나를 꺼내다가 입에 물며, 왼손을 아이의 눈 앞으로 내밀었다. 슬그머니 몸이 뒤로 빠지던 아이는, 우연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우연의 얼굴을 본 후 눈 앞에 내밀어진 손에서 반지를 보고, 고개를 휙 돌렸다.


"..무슨 반지가 알맹이도 없대요? 반지하면, 다이아몬드라구요."


"그래서 결혼 반지는 알맹이 큰 다이아몬드 박아서 준비하려구."


 우연이 풍선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잡고 다시 입에 물어 한 번 더, 후우- 숨을 불어넣었다. 오른손으로 분홍색 풍선을 골라 꺼내 아이 침대 위로 가볍게 던진다. 아이가 우연처럼, 꼬리 올라간 입으로 풍선을 물었다.


"..와아."


 처음엔 우연 혼자, 다섯개쯤 불었을 쯔음부터는 우연과 아이가 함께 분 풍선이. 2인실이지만 꽤 넓은 병실 바닥을 빽빽히 채우고도 남아서, 열대여섯개정도의 풍선이 다른 풍선들 위를 둥실둥실 떠다닐 때쯤에 나타난 수인은. 웃음끼 가득한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언제 다 터뜨리려고?"


 아이의 입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커다란 풍선이 푸쉬쉬 소리 내며, 활짝 열려있는 창문 밖으로 힘차게 빠져나갔다.


"이렇게 이쁘게 다 불어놨는데 터뜨리겠다구요?! 뭐야, 언니는 감탄사 한 번 내뱉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거 왜 이렇게 불어놓은 거야!!"


"어머,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수인이 아이의 버럭 소리지름에 우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닌데?"


 이번엔 웃음 참는 우연의 목소리에 아이의 불꽃 뿜어내는 눈이 휙 우연에게 꽂혔다. 설마 그냥 심심해서 풍선 불다보니, 이렇게 많이 불어버렸다는 건 아니겠지? 묻고 싶은 아이의 입이 달싹였다. 아이는 방금 전 우연에게 처음으로 말 걸었던 때처럼, 궁금한 건 해결해야 했고, 참을성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그렇다고 하면, 내가 손수 이 풍선들을 밟아 터뜨려주리라 생각했다. 아이의 입이 열렸다. 드디어 질문이 혀를 타고 기어나오고 있었다. 암울하게 스물스물.


"네게 주는 거야. 수인이 룸메이트라서, 앞으로 많이도 볼 테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점수 좀 따려고."


"나 잘 봐달라는 뇌물이기도 하고 말이지?"


 우연이 입을 벌린 채 정신을 날려버린 아이에게 줄 두번째 선물로 수인의 침대에 조심스레 올려놨던 가방을 품에 안았다.


"이건 내가 주는 두 번째 선물!"


 하지만, 그 선물은 우연이 가방 지퍼를 여는 순간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고, 아이의 정신을 돌아오게 했지만, 우연의 넋을 앗아가버리는데 한 순간이었다.


"푸들이.. 선물하려했던 푸들이. 선배에게 부탁해서 만들어 온 푸들이. 터져버렸어.."


 수인은 오버스럽게 부들부들 떨어대며 울상 짓는 우연의 머리를 여유있게 웃으며 쓰다듬었다.


"괜찮아, 내일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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