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이들리니/준하동주] 쏴아~ (for. 괴암님)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머리가 청각을 마비시켰다. 옆을 스치는 환자들의 대화소리, 간호사들의 인사소리, 심지어 뚜벅뚜벅 가까이서 저를 따라오는 복도를 걷는 발 밑 딱딱한 구둣소리마저 저 멀리서 들려 온다. 목적지로 두고 있는 병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 귀는 동주의 귀마냥 소리를 잃어하고, 입술은 아픈 환자마냥 바짝바짝 마르고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든다.
이렇게 동주에게 달려가는 주치의 노릇 같은 건 앞으로 다시는 하게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최진철의 뒤를 이어 우경을 이어 받으면 경영으로 들어서, 의사 가운을 입을 시간따위 없을 줄 알았고. 아주 만약에라도, 경영에 등 돌릴 상황이 와서 다시 의사 노릇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진찰할 환자 목록 중에 차동주 이름만은 결코 적힐 일이 없을 거라 다짐했다.
엄마 빼고.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모든 일상 소리가 자신에게서 한 발자국씩 저만치 물러났는데, 옅은 울음 베어있던 동주의 목소리는 제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어느 때의 어느 소리보다도 더 크게 제 귀를 울린다. 생각 말자. 생각 말자. 절레절레, 고갤 저어 제 머리에 박힌 동주의 목소리에 뒤따라 내뱉어지려는 제 울음 섞인 후회를 떨쳐내려 노력한다. 몇 시간동안 그렇게 주문을 걸어놓고도 이렇게 쉽게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그 후회하고픈 마음을 이제 와서 떨쳐낼 수 있을 거라 기대 하지는 않지만, 애써 덤덤하게.
제 가슴을 찢어내는, 입 밖으로 저도 모르게 내뱉어버리려는 날카로운 죄를 다시 한 번 몸 속 깊숙히 삼킨다. 겨우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동주의 목소리에 잘못 했다 눈물 흘리며 후회하기에는, 지은 죄도 없이 미안해 사과부터 하던 동주에게 홧김에 내뱉은 제 죗값이 너무 크다. 바보같은 장준하. 결국엔 동주 말대로 후회할 선택만 한 바보같은 장준하. 아파해라. 더 아파해라 장준하. 제 아린 심장에 손을 얹는다. 적어도 동주가 깨어날 때까지.
아, 걸음을 멈췄다. 병실에서 나오는 태현숙의 모습에 막 돌아선 코너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아아, 병실 문을 닫자마자 바닥으로 주저앉은 현숙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발을 내딛어 바라보고 있자니, 작지만 언제나 당당했던 태현숙의 숨죽인 오열에 준하의 기분도 썩 좋지만은 않다. 이상한 일이다. 태현숙이 저렇게 무너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동주를 그렇게 몰아붙였을 텐데.
동주야. 동주야.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를 최대한 억눌러, 억장이 무너지듯 동주 이름을 부른다. 아니, 머리를 흔든다. 그제서야 현숙의 목소리로 포장됐던 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동주야. 동주야.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뱉지 못 한 제 부름이다. 현숙의 울음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린 제 울음이다. 젖어드는 눈을 질끈 감는다.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어본다.
사고는 컸지만 외상은 상황에 비해 심각하지 않았고, 피는 머리를 잔뜩 적시고 있었지만 몸에 크게 무리가 갈 만큼은 아니었다고 했다. 수술 담당의가 괜찮다, 뒤늦게 동주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 온 준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곧 정신 차릴 거다. 동주를 아직 보지 못 한 탓에 놀란 심장은 터질 듯 뛰어댔지만, 친분 있는 믿을 만한 이가 자신있게 내뱉는 말에 안심했다. 정말 놀랬다. 몇 통인지 모를 태현숙의 전화를 무시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놓은 탓에, 뒤늦게나마 병원으로 가려는 창백해진 우리와 마주쳐 소식을 들었을 땐.
다시는 못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 동주에게 그 말을 당당하게 내뱉었던 건 분명 자신이었을 텐데. 정말 다시는 차동주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평생 보지 않으면 그제서야 정말 제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차동주가 죽어버린다. 동주가 죽어버린다. 그건 조금 많이 달랐다. 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 땐 정말 죽어버렸으면 했는데. 차동주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그 모습은 상상도 한 적 없었다.
내가 왜.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장준하. 너나 죽어버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하얬다.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그렇게 싫어라하는 호흡기를 달고. 하얀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가장 잘 아는데, 그런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됐나보다. 내 말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나보다. 정말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후회할 짓 하지 마.
차동주 형 장준하처럼, 동주의 어깨를 툭툭 쳐 굳게 닫힌 눈을 열게 하고 웃으며 물어보고 싶었다. 겨우 아이큐 300 주제에, 어떻게 301씩이나 되는 내가 후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냐고. 여지껏 자신이 해왔던 매정한 태도 다 덮어버려 애써 웃을 준비 하고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동주의 어깨를 건드렸는데, 제게 닿는 손길에 금새 반응해 제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동주 답지 않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부족한 잠을 몰아서 자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아침에 이렇게 죽은 듯 정신 못 차릴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믿고 싶어, 깨우지 말자. 손을 거뒀다.
"다시 차동주 형 할게. 태현숙 아들 자리에 목메지 않고, 최진철 아들 자리에 죄스러워하지 않고, 봉마루 자리에 눈 돌리지 않고. 네가 장준하 생각하듯 차동주만 생각하는 차동주 형 장준하 해 줄게."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동주야. 제 형인 장준하를 안절부절 못 하게 하려고 눈을 뜨지 않는 동주의 곁에서, 꼬박 하루를 지켰다. 저 눈이 떠지면 가장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아직 네게 내 자리가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말해야 했다. 하지만 담당의가 장담했던 하루가 지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그리 싫어하던 잠에 빠져 하루가 이틀이 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어 들리지 않으니, 제 형의 후회하는 말을 들을 수 없고. 제 형의 마음이 들리질 않으니, 눈을 뜨고나면 다시 제 형과 싸울 생각에 겁이나서 눈을 뜰 수 없나보다. 그래서 힘없이 늘어진 동주의 손을 강하게 잡았지만, 동주의 눈이 뜨여지긴 커녕 더욱 커다란 절망만 느낀 준하의 눈마저 감겨 눈물만 넘쳤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사흘 내내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한 피곤함에 잠시 벽에 닿은 뒷통수만으로도 눈이 감겼었나보다. 눈을 감자 악몽처럼 찾아 온 상황은 마치 1년도 더 된 지난 이야기같이 벌써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얼굴을 쓸어내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손바닥을 적셨다. 또 울었구나. 이젠 스스로를 비웃는 웃음조차 내뱉기 힘들다.
"장준하? 준하. 준하야, 준하야-."
아. 준하의 입에서 당황스러움이 터졌다. 가까이에 현숙이 있음을 깜빡 잊었었다. 자신의 팔을 강하게 잡은 손의 힘이 참으로 익숙하다. 귀 들리지 않는 하나뿐인 제 아들을 혹독하게 세상에 맞춰놓고, 정작 그렇게 애써서 세상과 맞닿은 동주를 귀머거리라서 믿을 수 없다며 모든 일을 제게 의지하던 손길이다.
"준하야. 우리 동주. 우리 동주 어떡해. 어떡해 준하야. 살려줘. 살려내. 준하야. 준하야."
"만지지 마. 소름끼쳐 할 거잖아. 눈 앞에 귀도 멀지 않은 멀쩡한 상태로. 아니, 이제는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증오스럽겠어."
현숙의 손을 거칠지 않게 뿌리쳤다. 입 밖으로 튀어나간 말도 악에 받친 말보다 상처받았음을 알리는 투정에 불과했다. 준하가 제 입 안을 깨물었다. 동주가 멀쩡히 돌아다니던 나흘 전까지만 해도, 동주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심장이 철렁하다가도 현숙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싸해져 모든 분노가 쏟아졌었다. 본인인 자신도 몰랐던 일을 알아차리지 못 해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던 동주도, 주치의인 장준하 없이 평소처럼 혼자 아플 동주도, 심지어 물에 빠졌다는 동주마저도. 현숙의 악에 받친 말 한마디만큼도 제 가슴에 닿지 못 했다.
"준하. 준하야."
그랬는데, 차동주가 저렇게 이유없이 의식을 찾지 못 하고 있는 이 상황 하나에, 그토록 바라던 현숙의 눈물마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차마, 의식도 없는 동주에게 제발 얼른 깨어나라고. 잘못 했다고. 입 밖으로 쉽게 내뱉을 수 없었던 이유다. 네가 정말 못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야 네가 내게 가장 소중한 듯 구는 내가 너무도 한심하고 죄스럽고 창피해서. 염치가 없어서.
차동주-!!
무슨 일이든지, 예 어머니 대답하고 일 처리하던 준하라면, 일어나지 않는 동주도 깨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현숙이 다시 한 번 제 앞에 굳어 있는 준하의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 동주 밖에 없을 병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가라앉은 목으로 힘껏 소리 지르는 목소리에 준하가 제 앞을 막고 있는 현숙을 밀어 젖히고 멀지 않은 복도를 내달렸다. 병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급한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는 제 손이 원망스러워 이를 악 물고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급한 맘으로 몸부터 쑤셔넣듯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으아아-아!! 이번엔 차동주 이름 석자 아닌 비명소리가 터졌다. 벽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동주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준하와 현숙을 발견했다. 동주의 시선이 저를 향해있다 느낀 순간 준하의 입이 조심스레 열린다.
"동주야."
"쟤 왜 이러니. 준하야. 동주 얘 왜 이러는 거야."
항상 차분하던 제 아들답지 않은 동주의 모습에 당황한 현숙이 며칠 만에 깨어난 동주를 등지고, 모든 일을 해결해 줄 구세주마냥 준하의 팔을 잡고 울음을 내뱉는다. 차동주? 준하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 본다. 하지만 준하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동주가 내보인 반응은, 새하얀 시트를 뜯어낼 듯 강하게 잡은 부들부들 떨리는 새하얀 양 손 뿐이다.
"도, 동주야!!"
퍽-, 동주가 내던진 베개가 현숙의 얼굴 앞을 막은 준하의 팔에 맞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베개 뿐이었지만, 자신에게 무언가를 던졌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현숙이 깜짝 놀란 얼굴로 동주의 이름을 외친다. 현숙과 달리 입을 꾹 다문 준하의 표정 역시 이젠 가릴 수 없는 울음이 가득하다. 으아아-!! 동주가 다시 한 번 소릴 지른다. 하얘서 순해보이기만 하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고, 목엔 핏대를 바짝 세운 채 소리 지른다. 계속 저러다간 목이 상해버릴 거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에 준하가 저를 보지 않는 동주에게 다가간다.
'동주야."
동주를 꽈악 끌어 안았다. 품에 안긴 몸이 포도당 외의 영양을 섭취하지 못 한 것은 의식을 잃었던 사흘뿐이었을 텐데, 그보다 더욱 얇다. 보나마나 밥 먹으라고 잔소리 하는 장준하 없다고 끼니를 제때 챙겨먹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미안해. 미안해 동주야. 형이 미안해. 품에 끌어안자 얌전해진 동주의 등 뒤로 자연스레 준하의 후회가 입 밖으로 스며 나온다.
"동주야.. 괜, 찮아?"
준하가 끌어안자 얌전해진 동주의 반응에, 현숙이 조심스레 준하의 등 뒤에 섰다. 조심스레 동주의 시선에 제 입을 맞춰 이름을 부른다. 아, 아아-!!!!, 현숙의 부름에 동주가 준하를 밀어낸다. 힘이 없어 제대로 밀어내지도 못 하면서, 저를 품에 안은 준하를 계속해서 밀어내려 애쓴다.
"동주야. 괜찮아. 차동주. 괜찮아."
준하가 저를 밀어내려 애쓰는 동주를 품에서 떼어냈다. 양 손으로 얼굴을 잡아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동주의 시선에 제 입모양을 맞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동주야. 괜찮아. 준하의 말에 동주의 눈에 눈물이 금새 가득 차 오르고, 제 머리를 잡은 준하의 팔을 잡아 들어가지도 않는 힘을 주려 노력한다. 진정해. 진정해. 동주야.
준하가 동주의 머리를 놓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머리를 다쳤는데, 흔들게 할 수 없어, 놓아달라 제 팔을 잡는 동주의 손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이 슬프다. 아, 아아-!! 이 반응을 안다. 16년 전 동주가 세상의 소리를 강제로 등져야 했을 때, 1년간 시도 때도 없이 들려 오던. 다시는 듣고 싶지 않던 소리다.
"으아아-!!!!"
간호사! 간호사! 현숙이 병실 밖으로 나가 간호사를 부르는 목소리에, 준하는 계속해서 저를 밀어내려는 동주를 다시 한 번 끌어 안았다. 지금 간호사나 의사가 와 봤자 동주에게 주어지는 것은 진정제 뿐이다. 어떻게 깨어났는데. 얼마나 기다렸는데. 몇 주 전, 가장 최근에 장난스레 껴안았을 때보다 야윈 동주의 어깨에 제 눈을 묻는다. 억누르던 제 울음이 터지고, 동주의 어깨를 감싼 얇은 환자복이 잔뜩 젖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저를 끌어 안고 제 어깨를 잔뜩 적시며 온 몸을 떨어대는 준하의 울음에, 같이 흔들리는 동주가 눈을 감았다.
나처럼 잊어버려, 쏴아~.
그래서 잊어버린 거야? 아. 눈을 깜빡였다. 몸을 일으켰다. 버릇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눈이 따끔하다. 잔뜩 울다가 자서 그런지 부은 눈이 조금, 뜨기도 힘들 정도다. 근데 여기 어디지? 성의 없이 한 번 주위를 훑어보고, 넓은 침대 머리맡에 제 양 무릎을 끌어안고 깜깜한 창 밖만 바라보는 동주의 뒷모습이 확실히 현실다워 가슴을 쓸어 내렸다. 깨어났었지. 설핏 떠오른 꿈에서는, 몇 달 전의 동주가 나타나 피곤한 몸을 제 침대에 누이고 그 환한 웃음 보이며 제 기억을 한 손에 담아 머리 밖으로 빼내었다.
"동주야."
동주의 어깨를 잡았다. 제 어깨를 잡은 준하의 손을 따라, 팔을, 어깨를, 목을, 입술을, 코를, 눈을 차례차례로 훑은 동주의 눈이, 고개가 다시 창 밖으로 돌아간다. 동주야.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고 어깨를 잡은 손에 조금 강한 힘을 주고 몸을 돌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무 이상 없이 깨어날 거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리 큰 타격을 입히지도 않았다. 조심스레 물어봤던 가장 예민한 머리 부분도 아무 이상 없다. 그렇게 말했었는데.. 장선생도 알겠지만, 정신적 충격 때문이야. 현숙의 부름에 허겁지겁 달려 온 담당의가 준하에게 말했다.
그래, 알고 있어. 동주의 환자복에 제 눈물 다 쏟아 내고 진정한 준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을 못 하나봐. 제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잊었나봐. 입모양 읽는 건 잊지 않은 듯 한데 들리지 않는다는게 충격이었는지 이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아. 냉정하게 결론 내리는 준하의 말에, 다른 보호자들에게처럼 함부로 말 할 수 없어 입술만 수없이 떼었다 닫은 의사가 맘을 놓았다. 알고 있다면 굳이 다시 한 번 말 할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제 이름은 불렀잖아. 준하야. 분명히, 차동주 하고 제 이름 외치는 소리, 우린 들었잖아. 동주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숙이 조급하게 준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준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아마 자신의 이름만을 기억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친 듯 말 없이 고개만 젓는 준하 대신 담당의가 조심스레 말했다.
"형이라고 한 번만 불러 줘, 동주야."
이후로, 스킨쉽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동주의 손을 잡았다. 형. 형. 준하형. 눈을 감으니 저를 부르는 동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5년 전 동주의 말이 다시 틔인 이후로,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엄마 아닌 형을 찾던 동주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준하만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웃음기 섞인 현숙의 질투에도 부정 않고 웃기만 했던 동주의 얼굴도 따라 떠오른다.
"미안해. 동주야. 형이 잘못했어. 잘못했어."
동주는 저를 이끄는 손길에 얌전히 준하의 뒤를 따랐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자신을 끌어안은 품이 낯익은 느낌의 남자의 뒷모습이 불쾌하진 않았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는 넓은 병실이 낯설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쑤셔오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팔다리, 욱씬거리는 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도 조용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형?
입을 열었다. 형? 제가 입을 열어 불러놓고도 의심스러워 다시 입을 닫았다. 나 형이 있나? 왜 형이라고 했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머리에 둘러진 붕대가, 자신이 지금 어디를 다친 상황인지 설명해줬기에 병실 밖으로 나갈 생각은 접어두고 너스 콜을 찾았다. 그럼 누구든지 와서 형과 엄마에게-.
형? 엄마?
"동주야."
버릇처럼 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동주의 뒷모습에 준하가 목구멍을 간지르는 이름을 참지 못 하고 내뱉었다. 분명 유리에 제 모습이 비췄을텐데, 일주일 전 병원에서 퇴원 후 함께 식물원 집으로 돌아 온 동주는 여지껏 단 한 번도 저를 향해 먼저 뒤 돌아주지 않는다.
건드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바깥만 보고 있는 모습에, 바깥에 나가고 싶은걸까, 움직일 생각도 없이 굳어있는 동주의 손을 잡아 문 밖으로 이끌어 본다. 힘 없이 끌려오듯 따라오는 동주를 애써 모른 척 문을 열고,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가볍게 떨리기 시작하는 동주의 손을 더욱 힘 주어 잡았다.
"괜찮아. 형이 옆에 있어."
제 입모양을 읽으라고 동주의 눈 높이에 제 입을 맞춰도, 동주는 시선을 피할 뿐 말을 읽으려 들지 않아서. 동주는 듣지 못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동주의 두려움에 굳게 닫힌 두 눈 앞에 말을 내뱉였다. 이번엔 정말 형이 옆에 있을게. 갑작스레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깜짝 놀란 동주가 눈을 떴다. 문 밖을 처음 나섰을 때보다 많이 진정됐던 떨림이 다시 강해진 동주의 손가락이 먼저 준하의 팔에 닿았다.
"괜찮아. 동주야."
제게 바짝 붙어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떠는 동주의 목표 없이 어수선한 시선에 준하의 입술이 조심스레 찾아 왔다. 형이 계속 옆에 있을게. 정말로 오랜만에 제 말을 주시하는 동주의 시선에 준하의 얼굴에 웃음이 스몄다. 제 팔을 꼬옥 잡아오는 키만 큰 등치가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그저 또 다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제 몸을 수그린 것인지 차이를 둘 순 없었지만. 동주가 제 말을 외면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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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다정하고, 예쁜 준하동주 쓰시는 괴암님께 드립니다~>_<
부디 이런 어색하고 어색하고 이상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뭐같은 글이지만;;;;;;
부끄럽고 죄송하고 염치없지만 부디, 받아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슨 사고를 당해, 정신적 충격을 먹고
제 이름과 기본 생활 능력은 기억하지만
장준하와 우경 모두 잊고
아무리 불러도 반응 없는 차동주.
라고 리퀘 해 주셨습니다만........
이건.. 쓰고나니, 준하 독백 글?!!!!!!!!!
................그래서 이걸 괴암님께 드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이 했습니다;
여지껏 쓴 한 편짜리 중에선 제일 깁니다만, 계속 반복되는 문구들이랄까;;
마음에 안 드시면 반납하셔도 전 괜찮아요>_<(..
그리고 내마들 끝났는데도 이렇게 찾아 와 댓글 달아주시는 님들
정말정말 감사하고. 보실 것도 없이 새로 올리는 것 없어 죄송합니다;;;;
정말 저는 천~천~히 살고 있네요OTL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부디.. 라고 조금 뻔뻔스레 낚시질을 해봅니다;;
졸려서 눈 앞이 안 보이네요ㅠ 그만 자러;;
이쁜 꿈들 꾸세요>_<
아래는, 잘린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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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오빠!
오면 안 돼. 동주 지금 시간이 필요해. 기다려줘. 차동주는괜찮아? 걱정스레 묻는 우리에게 찾아 오지 말라고 상황을 이해시킬만한 말을 한 게 닷새 전이다. 네가 왜 여깄는 거야. 우리의 등장에, 처음보다 많이 진정됐던 떨림이 더욱 강해진 동주가 먼저 준하의 팔에 닿았다.
동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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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누나는? 다른 걸 생각하기로 했다. 누나는 없다. 그건 확실했다. 그럼 엄마. 아빠.. 잠깐 내 이름이 뭐였지? 차동주. 그래 차동주. 곧바로 떠오르지 않은 제 이름에 쿵하고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 살아났다. 안심스러웠다. 그래, 난 차동주다. 차동주.
차동주.
아. 다시 한 번 급히 입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계속 입을 열었는데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나보다. 병실을 울리는 제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았다. 혹시 내가 입만 움직이고 소리내지 않았나? 입을 열었다. 목을 울렸다. 차동주.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불렀다. 조용하다.
차동주!!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불렀다. 이번엔 조금 더 크게 불렀다. 목이 아팠다. 바짝 마른 입 안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내가 말을 할 줄 몰랐나? 급히 고개를 저었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난 벙어리가 아니다. 말 하는 법을 알고 있어. 절레절레 젓는 고개에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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